이 글은 저희 부부가 노후 준비를 시작한 2년 전, 순자산 계산을 한 날의 이야기입니다.
마흔이라는 나이에 접어들면서 은퇴 준비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들만큼 벌고 남들만큼 쓰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소득이 멈춘 후에 말이에요.
불안해진 마음에 주식 계좌를 뜯어보고, 인기 종목을 검색하고, 어느 증권사 앱이 수수료가 낮은지 비교하려다가 문득 멈췄습니다. 어디에 투자할지 고르기 전에, 지금 저희 부부가 쓸 수 있는 실탄이 얼마나 되는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남의 집 포트폴리오 구경보다 내 집 체급 파악이 먼저였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함께 생전 처음으로 순자산을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통장 잔고와 주식, 그리고 차마 눈 감고 외면해 왔던 숨은 빚까지 엑셀에 탈탈 털어 마주한 그날 밤의 솔직한 기록입니다.
1. 예적금부터 주식까지, 여기저기 흩어진 우리 집 재산 긁어모으기
엑셀에 표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왼쪽 열에는 ‘자산’, 오른쪽 열에는 ‘부채’. 일단 자산부터 채워보기로 했습니다. 막연히 ‘이 정도는 있겠지’ 하고 짐작만 해왔던 숫자들을 처음으로 한 줄씩 적어 내려갔습니다.
시작은 집이었습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실제 매매 시세’를 검색해 자산 칸에 기분 좋게 턱 적습니다. “그래도 집값이 이만큼이나 하니까, 꽤 괜찮네” 하며 안도했습니다.
다음은 월급 통장이었습니다. 계좌 잔고를 옮겨 적고, 그 다음은 청약 통장. 꼬박꼬박 넣어온 주택청약종합저축 잔액이 생각보다 제법 됐습니다. ‘오, 그래도 우리 열심히 살았네’ 하는 기분이 슬쩍 올라왔습니다.
그 다음은 주식 계좌였습니다. 국내 주식 계좌 두 개를 공인인증서를 동원해 하나씩 로그인하고 평가 금액을 확인했습니다. 여기에서 첫 번째 충격이 덮쳤습니다.
약 천만원 정도 투자되었던 종목이 상장폐지 직전이었습니다. 뜨고 있는 바이오주라는 소문을 듣고 덥석 산 후 계속 떨어지는 게 보기싫어 아예 접속조차 안했는데, 현재는 거래중지 종목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집이 있잖아. 라는 말로 애써 위안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남편의 DC계좌는 순항중이었습니다. 원금을 이미 훨씬 초과해 꽤 든든한 자산의 한 축이 되어 있더라고요.
총 자산 합계 숫자가 제법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이게 순자산 계산의 전반전이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후반전이었습니다.
2. 할부와 마이너스 통장, 눈 감고 외면해 왔던 숨은 빚과의 정면 승부
이제 오른쪽 열, 부채 칸을 채울 차례였습니다. 키보드 앞에서 잠깐 멈췄습니다. 쓰기 싫다는 게 아니라, 막상 적으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던 것입니다. 평소에 의식적으로 외면해 왔던 숫자들이었으니까요.
큰 덩어리부터 시작했습니다. 주택 담보 대출, 이건 금액이 크지만 오히려 마음이 익숙했습니다. 항상 인식은 하고 있었으니까요.
카드 할부 잔액. 여행 때 긁었던 항공권 할부, 별 생각 없이 나눠낸 가전제품 6개월 무이자 할부. ‘다음 달이면 없어지겠지’, ‘무이자니까 부채가 아니지 않나’ 하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외면해 왔던 것들이 줄줄이 소환됐습니다. 합산하니 예상보다 두 배 가까이 됐습니다.
마이너스 통장. ‘비상금용’으로 만들어둔 통장인데, 어느 순간부터 비상도 아닌 상황에 조금씩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월말에 카드값이 빠듯하면 10만 원, 갑자기 경조사비가 나가면 30만 원. 그렇게 조금씩 써온 금액이 통장에 마이너스로 표시된 숫자로 굳어져 있었습니다. 한 번도 상환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도 몰랐던 보험 소액 대출 한 건이 더 나왔습니다. 매달 이자만 자동으로 빠져나가고 원금은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였습니다. 어차피 내가 낸 돈에서 빌린건데 라는 생각으로 아예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산 총액에서 부채 총액을 뺀 진짜 순자산 계산 결과가 화면에 찍혔습니다. 생각보다 처참했습니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 같은 그 묵직한 감각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3. 밑 빠진 독을 발견한 날, 위기를 기회로 바꾼 부부의 첫 결단
돌이켜보면 그동안 저희 부부가 해온 ‘재테크’는 투자 공부의 탈을 쓴 정보 수집이었습니다. 어떤 주식이 수익률이 좋다더라, 요즘 미국 배당주가 대세다, 채권이 안전하다. 유튜브를 보고, 책을 사고, 리포트를 읽고.
그런데 순자산 계산 한 번 해보지 않은 채로 어디에 투자할지만 고민했으니, 그건 밑 빠진 독에 어떤 물을 부을지 고르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독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좋은 물이든 나쁜 물이든 결국 다 빠져나갑니다.
자산을 늘리기 전에 구멍을 막아야 한다는 건 머리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순자산 계산 결과를 눈앞에 숫자로 마주하고 나니, 그 말의 무게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지식으로 아는 것과 숫자로 느끼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저희가 식별한 구멍은 명확했습니다. 지금 없는 돈을 긁어 쓰고 다음 달에 갚는 구조, 즉 신용카드와 할부와 마이너스 통장이 만들어내는 ‘미래 부채의 연속’이었습니다.
투자를 시작하기 전에 이 구조를 먼저 끊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ETF를 매달 10만 원씩 사도, 마이너스 통장에서 더 빠르게 이자가 나가고 있으면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니까요.
재테크의 출발점은 좋은 종목을 고르는 안목이 아니라, 미래의 내 돈을 당겨 쓰는 습관을 끊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투자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딱 한 번만 엑셀을 열고 순자산 계산을 해보시길. 숫자가 뼈아프더라도, 그 아픔이 진짜 시작의 신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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