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산 계산을 마치고 마주한 우리 집의 민낯은 생각보다 훨씬 실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엑셀 창에 찍힌 마이너스 숫자를 보며 한숨만 쉬고 있을 시간은 없었는데요.
밑 빠진 독의 구멍을 크기별, 금리별로 분류해 당장 실행 가능한 대출 상환 계획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주담대 원리금부터 마통, 보험 대출까지 흩어진 빚들을 정복하기 위해 저희 부부가 세운 뼈를 깎는 우선순위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감정을 일단 옆으로 밀어두는 것이었습니다. 자책하고 싶은 마음, ‘그때 그 여행을 왜 갔을까’ 하는 후회,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 하는 막연한 죄책감. 그 감정들은 당장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노트를 펴고 빚의 종류별로 금리와 잔액과 만기일을 한 줄씩 다시 적었습니다. 감정이 아니라 숫자가 우선순위를 정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저희의 대출 상환 계획이 시작됐습니다.
1. 대출 상환 계획의 시작, 1년짜리 주담대를 5년 고정 원리금으로 묶다
목록에서 가장 덩치가 큰 빚은 역시 주택담보대출이었습니다. 처음엔 이것부터 빠르게 줄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숫자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접근 방식을 달리해야 했습니다.
저희 집 주담대는 치명적인 약점을 품고 있었습니다. 길게 나누어 갚는 일반적인 대출이 아니라, 원금은 단 1원도 갚지 않은 채 매달 이자만 내며 해마다 새로 갱신해야 하는 ‘1년 만기’ 구조였던 것입니다.
매년 만기 시즌이 돌아올 때마다 연장 여부와 금리 변동까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습니다.
[욜로 끝에 마주한 빚, 뒤늦게 시작한 40대 딩크의 실전 은퇴 준비] 글에서 밝혔듯, 저희 부부는 대출 상품에 대한 지식 또한 전무했기에 벌어졌던 일이었습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저희 부부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해마다 불안하게 연장하던 대출을 ‘5년짜리 원리금 균등상환’으로 바꾸고, 금리 변동에 휘둘리지 않도록 아예 고정금리로 단단하게 묶어버린 것입니다.
물론 이자만 내던 시절에 비해 매달 원금까지 함께 빠져나가는 금액의 묵직함은 당장 가계에 큰 부담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함정을 피해야 했습니다. 이자가 아깝다는 마음에 생활비를 무리하게 쥐어짜며 주담대 원금을 추가로 더 상환하려다 보면, 어느 달에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겼을 때 결국 다시 마이너스 통장을 긁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담대 이자를 아끼려다 마통 이자를 더 내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주담대에 대한 저희의 결론은 단순했습니다. 5년 고정금리로 전환한 원리금 균등상환 금액을 관리비나 통신비처럼 ‘건드릴 수 없는 고정 지출’로 단단하게 묶어두는 것입니다.
추가 상환 욕심은 잠시 내려놓고, 마통과 보험 대출을 모두 정리한 이후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주담대는 ‘숨 쉬듯 갚는 기본값’으로 세팅하고, 나머지 여유 자금은 더 높은 금리의 빚을 먼저 공격하는 데 집중하는 전략이었습니다.
현명한 대출 상환 계획이란 가장 큰 빚부터 무작정 갚는 게 아니라, 구조를 안정적으로 통제해 가면서 가장 비싼 빚부터 차례대로 격파하는 것임을 이때 처음으로 체감했습니다.
위 사진은 실제로 제가 쓰는 가계부 가장 앞면에 붙여놓은 주담대 명세서입니다. 2024년 4월에 시작해 2029년 4월에 끝나는, 5년간의 상환 계획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2. 영혼을 갈아먹는 고금리, 마이너스 통장 잔고부터 무조건 채우기
대출 상환 계획의 다음 타깃으로 저희 부부가 지목한 것은 마이너스 통장이었습니다. 금액 자체는 주담대보다 작았지만, 구조 자체가 방만한 소비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설계된 상품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이너스 통장의 가장 무서운 점은 ‘쓰기 쉽다’는 것입니다. 잔고가 마이너스 상태에서도 체크카드 결제가 가능하고, 따로 대출 신청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쓰면 알아서 빠져나가니 ‘돈을 빌린다’는 감각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끌어다 쓰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 통장은 잔고가 마이너스인 순간부터 매일 이자가 붙습니다. 복리의 마법이 완전히 나쁜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주담대의 원리금 균등상환과 달리 원금이 줄어드는 구조도 아닙니다. 내가 갚지 않으면 마이너스 잔고는 그 자리에서 이자를 먹으며 불어날 뿐입니다.
결심을 굳혔습니다. 앞으로 수중에 들어오는 모든 여유 자금은 마통 잔고를 플러스로 되돌리는 데 최우선으로 밀어 넣기로 했습니다.
연말 보너스, 명절 상여금, 매달 남는 생활비까지 예외 없이 뒤도 안 돌아보고 마통 잔고부터 채우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이 돈으로 뭔가 사고 싶다”는 충동이 들 때마다 마통 잔고를 열어봤습니다. 마이너스 숫자를 보면 충동이 식었습니다.
마통 잔고가 0원이 되고 통장을 해지했을 때의 기분은 지금도 기억합니다. 작은 숫자가 플러스로 바뀐 것뿐이었는데, 이상하게 어깨가 가벼워졌습니다. 미래의 이자를 더 이상 예약하지 않는다는 감각이었습니다.
3. 내 돈인 줄 착각했던 보험 대출 삭제와 빚 갚는 우선순위의 정석
사실 이 항목은 순자산 계산 때 목록에 올리면서도 ‘이건 내가 낸 보험료에서 빌린 거니까 진짜 빚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험사에서도 ‘약관 대출은 내 돈을 담보로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니까요.
그런데 금리를 확인하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내 돈 담보’라는 말에 안심했는데, 숫자는 절대 안심할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매달 원금은 그대로이고 이자만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잊고 지내는 사이에 조용히 갈리고 있는 돈이었습니다. 당장 상환 목록에 올렸습니다.
보험 약관대출을 상환 순위에 올리면서 저희 부부는 대출 상환 계획에서 ‘빚 갚는 순서’에 대한 두 가지 원칙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금리 순서입니다. 원금이 얼마인지보다 이자율이 높은 빚을 먼저 없애는 것이 실질적으로 가장 이득입니다.
두 번째는 심리적 성취감입니다. 마통처럼 금리는 높지만 잔액도 큰 빚은 갚는 데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에 지쳐서 포기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래서 금리가 비슷하다면 잔액이 작은 빚을 먼저 없애는 것이 꾸준히 계획을 유지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보험 대출이 딱 그 역할을 해줬습니다. 잔액이 크지 않아 단숨에 갚을 수 있었고, ‘빚 하나 삭제’라는 명확한 성취감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추진력이 되어줬습니다.
빚이 목록에서 하나씩 지워질 때마다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단순히 숫자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미래의 나를 옥죄던 사슬이 하나씩 끊어지는 감각이었습니다.
약 2년이 지난 현재, 마이너스 통장과 자잘하게 있던 대출들은 모든 상환되었습니다. 5년짜리 주담대는 이제 3년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약 4개월 전부터는 미래를 위한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대출 상환 계획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저희는 한 가지 명확한 사실과 마주했습니다.
아무리 빚을 갚으려 애써도, 신용카드로 미래의 돈을 계속 당겨 쓰는 한 구멍 막기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빚을 갚는 속도보다 새로운 빚이 만들어지는 속도가 더 빠르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요.
2년전, 대출 상환 계획과 함께 저희가 내린 결단은 신용카드를 완전히 잘라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번에는 신용카드를 없앤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